장님들

<연출의 글>

 

연출 : 이현찬(극단 그림연극 대표)

메테를링크(Maeterlinck)의 작품은 무대에서 자주 공연되고 있지 않다.

우리에게 메테를링크의 작품이 알려져 있다면 "펠리아스와 멜리상드" "파랑새" 등일 것이다.

그는 작품에서 희랍극의 맥락으로 전설적 이야기에서의 인간의 운명을 다루고, 이 때문에 인간배우연극 보다는 마리오네뜨(Marionette)를 위한 인형극 희곡을 많이 썼다. 문장마다 베어있는 재치와 희극성은 읽을수록 그 깊이가 심오한 상징물로 다가오고 참 잘 썼다라고 마음속에서는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무대에 작품을 형상화해야 하는 순간 그 모호함에 생각이 막힌다.

메테르링크가 한 연출가에게 쓴 편지에서 이 작품을 "정체연극(static drama)"이라고 직접 명칭을 붙였다. 이런 명명에서 자연주의적인 드라마와는 성격이 다르다. 메테르링크의 작품을 소련의 혁명기에 무대연출을 했던 마이어홀드(Meyerhold)는 "제한된 극" 이라는 극단적인 형식화 속에서 드라마의 필수적인 부분만을 표출 시켜 모든 자연주의적인 것, 표현적인 동선들에 반기를 들었다. 결정적인 동선들, 기하학적으로 정제된 성격들로 구성된 것만으로 가능하고, 이것은 화가 말레비취(Malevich)의 그림과 같이 가장 중요한 것들만으로 줄여지고 추상적이 된 연극언어의 인상을 전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작품 "장님들"은 원래 12명의 장님들이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이번 공연에서는 단지 정련 된 4명의 배우 구성으로 무대화했다. 이 작품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장님이라는 신체장애자의 설정은 미래의 불확실성에 놓인 우리 인간상황을 의미한다. 그래서 작품의 주제로: 장님이라는 운명을 타고난 인간들의 존재에 대한 강한 비유로 맥을 잡았다.

메테를링크는 이 작품에서 뚜렷한 인물의 성격을 강조하기 보다는 개별적인 장면과 장면으로 상황을 구축했다. 이런 분위기가 자칫 상징주의극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관객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긴장된다. 관객에게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그 깊이 있는 내용을 다양한 볼거리로 재미있게 만들겠다. 대사의 이미지적인 부분을 시청각적으로 풀어서 영상 애니메이션을 사용하고, 후반부에는 인형으로 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