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님들

<메테를링크와 상징주의>

 

배혜화(전주대학교 언어문화학부 교수)

삶을 충실히 재현하여 그 한 조각을 보여주는 사실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일어난 상징주의는 가시적 현실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직접 묘사하지 않고도 암시와 뉘앙스로 그 대상의 이미지를 연상시키고자 했다.

간결하고 우수에 젖은 문체로 인생의 신비와 숙명을 프랑스어로 노래한 벨기에 상징주의 시인 메테를링크는 명료한 지성을 갖춘 철학자로서 인간조건의 비극성을 심도 있게 다룬 철학서적도 여러 권 저술했다. 부조리한 인간조건에 대한 절망에서 야기된 불안을 고독과 침묵 속에서 명상으로 마음의 평정을 얻고자 하는 작품들이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상징주의 기법으로 교묘히 무대화하여 환상적인 내면극 theatre d'Interieur을 전형화 했다. 인간의 심층의식 즉 '영혼의 상태'에 대한 형이상학적 갈망으로 이상주의와 정신세계를 추구한 것이다.

그의 초기 극작품 〈말렌 공주 La Princesse Maleine, 1889〉는 '꼭두각시들을 위한 극 piece pour marionnettes'이라 불렸다. 신비로운 숙명의 힘에 조정되는 인간 군상을 그리고자 한 것이다. 이번에 극단 그림연극에 의해 우리나라에 초연되는 <장님들 Les Aveugles, 1890>도 마찬가지이다. 메테를링크는 말이 없어 '몹시 과묵한 사람 Le grand "taiseux"'이라는 별명을 가진 자답게, 그 작품의 등장인물들에게 대사를 아꼈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기한다기보다는 단조로운 톤으로 대사를 읊으며 느리게 움직인다. 몰개성적이고 반복적이다. 무대 장치 또한 사실성을 배제한다는 맥락에서 단순하고 추상화 되었으며, 조명과 음향 같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요소들은 강화되었다. 즉, 관객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그 어떤 것도 무대에서 배제되고 억제된 것이다.

이와 같이 상징주의 연극은 의사전달이 아니라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것이 목적이므로 신비롭고 몽환적이며 시적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배경에 일체의 설명이나 묘사를 배제하고 연상과 유추 등의 미묘한 내면의 문맥에 의존한 은유와 암시로 가득 찬 무대는 애매 모호하고 난해할 수밖에 없다. 이 논리를 초월하고 이론적인 해명을 거부하는 은유와 암시의 해독은 바로 우리 관객 각자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