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어파우스트

파우스트의 기백과 그레첸의 순수성

『원(原) 파우스트』에 담긴 젊은이들의 사랑

 

안삼환(서울대 독문과 교수, 한국괴테학회장)

괴테의『원(原) 파우스트 Urfaust』는 1773년부터 1775 년 사이에 씌어진 원고로 추정되고 있는데, 괴테의 이 작 품에 접하게 된 바이마르 궁정의 한 여성이 자신의 가족들 간에 돌려읽어보기 위해 베껴놓았던 필사본이 괴테 사후 50여년이 지난 뒤에야 발견되어 1887년에야 책으로 출간되었으며, 1912년에야 바이마르에서 독립된 하나의 연극작품으로서 초연된 바 있다. 『원 파우스트』는 일반 적으로 1808년에 나온 『파우스트 제 1부』의 초고로 간주되고 있으나, 괴테의 필생의 대작인 방대한 『파우스트』 (제1부 및 괴테 사망 1년 전인 1831년에야 완성된 제2부)에 비해 극의 구조가 간단할 뿐만 아니라, 이른바 질풍노도시대의 젊은 괴테의 기백과 순수성이 극명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불후의 대작 『파우스트』와는 다른 의미에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원(原) 파우스트』의 주인공 파우스트는 질풍노도시대의 천재사상을 체현하고 있는 인물로서 자신이 신과 대등한 창조자의 반열에 설 수 있다고 믿는, 여러 분야에 걸쳐 공부를 깊이 한 젊은 학자였다.
그는 매너리즘에 빠진 기성 대학교수들의 현학적 태도와 그들의 죽은 학문을 단연코 배격하며 우주의 철리와 인간존재의 근원을 해명해 내고자 감히 지령(地靈)과의 대화를 시도한다. 그러나 그는, 자연의 원초적 비밀을 간직한 초월적 존재인 지령과는 직접 대면하기조차 어려운 한갓 나약한 인간으로서의 자신의 한계성에 부딪혀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이 순간,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이다. 파우스트는 그의 도움으로 이제는 죽은 학문의 길이 아니라 살아있는 삶의 의미를 얻고자 하는데, 이 때 그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 그레첸의 순진무구한 모습이었다. 파우스트는 메피스토의 도움으로 그레첸을 유혹하고자 한다. 한편, 파우스트의 귀공자다운 늠름한 모습에 반한 그레첸은 청순한 처녀로부터 갑자기 사랑에 가슴 태우는 여인으로 성숙해 가면서 단둘만의 사랑의 밤을 위해 파우스트가 건네주는 독약을 수면제로만 알고 어머니에게 마시게 하여 어머니를 독살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이 낳은 아기를 죽인 죄인이 되어, 죽은 아기에 대한 그리움과 죄의식 때문에 정신착란에 빠진 채 처형된다.

유혹과 영아살해, 그리고 처형에 이르는 이 3단계의 사건 진행은 18세기 중엽에 흔히 있던 영아살해 모티프에 불과하지만, 괴테는 첫사랑 - 제젠하임의 목사의 딸 프리데리케 브리온 - 을 버린 자신의 참회를 이 진부한 사건에다 영혼으로 불어넣어 하나의 생동하는 극작품으로 만듦으로써 기백있는 학자 파우스트의 비극으로, 그리고 순수한 아가씨 그레첸의 사랑의 비극으로 불후화하였다.

이런 중요한 작품이 이번에 한국의 무대 위에 올려지게 된다는 소식을 들으니 괴테와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기쁘고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 특히 연출과 파우스트 역을 맡은 이현찬 씨는 극의 스토리를 재현하는 리얼리즘 연극을 추구하지 않고 이른바 블랙 씨어터의 기법을 동원하여 연극을 영상예술화하기도 하고 독일 인형극의 환상적 기법까지 원용하는 실험적 연출가로 알려져 있기에, 『원 파우스트』가 어떻게 재해석될지, 그리고 이 작품이 과연 한국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는 작품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지가 자못 궁금해 지면서 이번 그의 연출에 큰 기대를 걸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