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어파우스트

독창적인 장르로서의 단편(斷篇) - 파우스트 초고

 

한국독일어문학회 회장 한 석종(경북대 교수)

"『파우스트 초고』는 제 생명을 가진 작품으로서 클라이스트 Kleist의 『로베르트 기스카르 Robert Guiskard』와 뷔히너 Büchner의『보이체크 Woyzeck』와 더불어 독창적인 장르 단편(斷篇)에 속한다. 불완전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불후의 명작이고 거침없이 스케치한 경이로운 형식이다."

브레히트 Brecht가 이처럼 찬사를 아끼지 않는 소위 『파우스트 초고』는 바이마르 공국의 여직원 괸히하우젠 Gonchhausen이 손수 남긴 사본으로서 젊은 괴테의 원본과는 다소 다르다하더라도 그때 모습을 재현할 수 있는 유일한 원고이다. 1887년 독문학자 에릭히 슈미트의 발굴로 탄생한 이 원고는 그 출간이후 독일연극계에서는 독자적인 레퍼토리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인식은 고전주의 중심적 문학연구의 영향에 따라 『파우스트 초고』를 『파우스트 제 1부』 생성과정의 한 단계로만 보게되고, 헤르더로부터 영감 받은 '불완전의 형식의지'를 미완성으로 간과하게된다.

한국 괴테 수용에서도 독자적 작품으로서의『파우스트 초고』이해는 찾아볼 수 없다. 『파우스트 초고』를 독자적 작품으로 읽는다 함은 『파우스트 제 1부』가 보여줄 과정의 결과를 의식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
반고전주의자 브레히트가 질풍노도 작품의 평가절상을 투쟁적으로 고집하던 시대는 지났다 하더라도 한 시대와 사조의 특별한 표현양식을 인정하고 그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는 문화적 다양성의 추구는 오늘날 한국 독일문학 수용의 합의적 요구이다.

『파우스트 초고』를 독자적 작품으로 읽는다 함은 - 파우스트는 마약도 불로초도 필요 없는 불 끓는 젊은이로서 학문에 대한 회의로부터 탈출을 시도한다. 메피스토는 신학적 담론이 필요치 않는 일상에서 부딪치는 생생한 "악" 그 자체로서 유혹의 손길을 뻗친다. 그에 대해 속칭 그레첸 Gretchen으로 알려진 마르가레테는 비운의 여성으로서, 그녀의 구원은 철저히 독자에게 유보된다. 영아살해로 치닫는 금기된 사랑의 결과는 "그녀는 심판을 받노라 Sie ist gerichtet"하는 메피스토의 목소리와 파우스트의 도주로 끝을 맺음으로써 카타르시스의 극치이다. 이러한 모습은 삶의 총체성을 주장할 수 없는 하나의 극단적인 단면으로서 당연히 단편(斷編)으로 형식화되고, 사건의 생생함을 체험하게 하고 카타르시스를 통해 독자의 순화를 꾀하려는 시학적 의도이다. 그 단편 사이사이를 메우는 일은 순화된 독자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