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푼짜리오페라

* 자료 1 - 이 글은 한국브레히트학회의 브레히트 심포지움 2002 (2002년 6월 1일, 대천 한국외대수련원)에서 발표되었던 것을 요약, 정리한 것으로 이번 공연의 준비 과정의 일부라 할 수 있다.

『서푼짜리 오페라』의 공연방향-드라마투르기의 관점

 

드라마투르기: 정민영(독문학박사, 한국외대 강사)

1. 주제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19세기 산업화 및 도시화에 따른 시민사회의 뒷면, 즉 이윤이 가치의 척도인 상품화된 사회, 그로 인해 약탈이 마치 삶의 한 방식처럼 되어버린 비인간적인 사회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고 풍자이다. 이 같은 사회적 상황은 권력을 등에 업은 비리의 구조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사회에 더욱 심화된 현상으로 브레히트의 비판은 현재의 한국사회에도 적합한 시의성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브레히트가 보여주고자 한 "예의, 도덕, 사업과 영광이라는 겉껍질 속에 숨어있는 강도의 질서로서의 시민 질서"를 무대에서 더욱 철저하게 구현하는 연출이 필요하다. "시민이 강도이고, 강도가 시민"인 사회가 현재의 한국 사회이다. 이를 보여 주기 위해 이 작품의 중심이 되고 있는 세 가지 사회집단, 강도, 거지, 창녀들에게 관객이 연민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들도 자신의 위치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이용하고 있는 천박한 시민의 구성원일 뿐이다.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어두운 일면에 대한 신랄한 비유로 읽힐 수 있다. 이 공연에서는 "강도의 질서"를 사업가 피첨을 통해 드러내 보이길 제안한다. 인간의 마음을 이용하여 장사하는 피첨은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상업성이 안고 있는 문제를 비유적으로 표현하기에 적합한 모델이다. 따라서 피첨에 중심을 두는 연출이 필요하다.

2. 원작에 충실한 공연 - 브레히트의 것은 브레히트의 것이다

최근 한국 연극계는 번역극 공연을 위해서는 - 마치 하나의 강박관념처럼 - 어떠한 형태로든 한국적 상황으로의 각색이 필수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때문에 내용과 형식이 겉돌고 원작이 담고 있는 고유한 의미를 상실한 어설픈 번안극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작품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이해가 선행되지 않고 겉으로 느끼는 분위기와 이미지만으로 각색이라는 미명아래 원작을 훼손하는 일은 작가와 원작에 대한 모독이다. 각색을 하려면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이를 통해 작업자의 새로운 세계관과 창조적 표현의 미학이 드러나야 한다. 이번 공연의 방향을 원작에 충실한 공연으로 제안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브레히트의 『서푼짜리 오페라』는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여 공연될 수 있는 충분한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작품의 주제는 현재의 한국사회 비판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하다. 어설픈 각색보다는 원작이 가진 주제를 철저히 구현하는 것이 한국의 사회를 비유적으로 비판하고 그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키기에 더욱 효과적이다. 다만 극의 진행 상 늘어질 수 있는 부분을 없애기 위해 필요한 경우 대사의 의도를 빠르게 전달할 수 있는 축약과 생략이 필요하다.

2) 또한 철저한 분석을 통해 원작이 가진 주제를 완벽하게 구현하는 것도 외국작품의 수용에 있어서 올바른 한 가지 방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외국작품이 갖는 세계관을 우리의 세계관과 비교하여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 때문이다.

3) 한 가지 더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이 공연이 최근 더욱 자본과 연결되어 상업화하고 있는 미국식 뮤지컬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관객을 압도하는 화려한 무대장치와 감성에 호소하여 관객을 흡입시키는 미국식 뮤지컬과 달리 연극에서의 음악이 단순한 부차적 효과음의 기능을 벗어나 독립적이고 관객의 비판적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면 이 공연은 성공적이다. 브레히트가 음악이 연극의 시녀가 되는 것을 거부하고 텍스트의 내용을 해석해 주어야 하며 내용에 대한 확고한 입장을 보여주고 행동을 부여할 수 있어야 함을 주장한 것과 관련하여 쿠르트 바일의 음악은 한국무대에서도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다고 본다. 또한 바일의 음악 멜로디를 그대로 사용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지금까지 브레히트가 사용한 음악이 한국에 거의 소개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실제 무대에서 1920년대의 바일의 음악이 시공간을 넘어 그 효과를 유지할 것인가는 이번 공연이 답해 줄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원작에 충실한 공연은 번역극과 관련한 지금의 한국 연극계 상황에서 오히려 "실험"일 수 있다.

3. 오락성과 비판정신의 겸비

"즐기면서 배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은 브레히트 연극이 가진 중요한 드라마투르기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이번 공연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긴장과 이완의 적절한 템포이며 관객의 감정과 시선을 효과적으로 다룰 수 있는 과감한 연출이다. 시민사회의 질서가 강도의 질서라는 것 자체가 이미 시민사회의 개선을 위한 과장된 비판적 비유이듯 작품의 핵심적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기 위한 표현 방식으로서 의도적인 과장의 기법이 필요하다. 언어와 게스투스의 의도된 과장성, 그리고 그 의도를 뻔뻔하게 드러내는 전략을 통해 즐거움과 교훈을 동시에 전달하는 연출을 요구한다.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첫 째, 노래 가사의 정확한 전달이다. 브레히트의 담시는 독립된 텍스트로서 관객의 비판적 사고를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둘 째, 과장이 단순한 개그의 일회적 웃음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된다. 웃음의 기능 중 하나가 비판 정신에 있다는 이론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연출이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강조해야 할 부분은 주요 인물들의 관계에서 파악되는 착취, 그리고 개인적 이익을 위한 유착의 게스투스 Gestus이다.

1) 매키스와 부하 강도들 / 피첨과 거지들

매키스는 사업가 행세를 하는 조직 폭력단의 두목이며 부하 강도들은 매키스의 사업에 고용된 직원들이다. 마찬가지로 피첨 또한 거지들을 고용한 사업가이다. 이 고용 관계는 사실상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억압의 관계이고 인간이 인간을 소모품으로 보는 상품화된 현대 사회의 전형을 드러낸다.

2) 매키스와 브라운 / 매키스와 창녀들

매키스와 부하들, 피첨과 거지들의 관계에서도 드러나는 것이지만 개인적 이익을 위해 서로 유착하여 공생하는 전형을 매키스와 브라운, 매키스와 창녀들의 관계가 보여준다. 서로가 서로를 이용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위해 철저한 계산을 하는 인간의 모습이 이들의 관계를 통해 강조된다.

3) 매키스와 폴리 / 매키스와 루시

매키스와 피첨의 대립관계, 매키스와 브라운의 유착관계가 갖는 단순성을 보완함과 동시에 상품사회, 소유욕이 지배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극적 재미를 위한 관계 설정이다.

매키스를 사이에 두고 벌이는 폴리와 루시의 싸움은 인간을 소유할 수 있는 재산, 물질로 보는 시민사회에 대한 풍자이다.

과장의 기법을 통해 의도적으로 강조하는 이 같은 인물들의 관계에서 이 인물들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모순성 또한 철저하게 드러날 수 있다.

매키스 - 강도이자 바람둥이면서 신사의 예의를 보여줌.

폴리 - 사랑에 빠진 애틋한 여자의 감정과 동시에 사업가의 딸로서 계산적인 면을 보여줌.

피첨 - 성경을 들고 가난한 자들을 구원하는 겉모습 뒤에 숨은 착취.

브라운 - 시민을 위한 경찰임에도 범죄자를 옹호.

제니 - 사랑하는 매키스를 돈을 위해 고발하는 이중성.

4. 단순화

"강도의 질서로서의 시민 질서"라는 브레히트의 비판을 관객이 더욱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장면의 핵심을 의도적으로 강화하고 단순화하는 연출이 필요하다. 이에 따라 브레히트의 텍스트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부분적으로 번역 텍스트를 단순화하고 생략하여 보다 빠른 템포를 만들어내야 한다. 간결하고 명료한 구성은 감정의 절제와 작품의 핵심에 대한 빠른 인식을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배우의 연기는 "강도의 질서"를 구현하는 게스투스를 보여 주기 위해 그 특징을 강조할 수 있도록 단순하게 양식화하여야 한다. 마지막 9번째 장면, 매키스가 「묘혈에서 부르는 소리」를 노래하는 장면에 대한 브레히트의 연기지침은 이를 위한 좋은 본보기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매키스 연기자는 감방 안에서 원형으로 빙빙 돌며, 그가 이제까지 관객에게 보여준 각종 걸음걸이를 모두 반복할 수도 있다. 유혹자의 철면피한 걸음, 쫓기는 자의 맥없는 걸음, 거만한 걸음, 각성한 자의 걸음 등. 이 짧은 배회에서 그는 지난 며칠 간 매키스가 드러냈던 모든 자세들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다."

무대 또한 이 같은 게스투스와 평범한 시민사회를 드러내는 단순한 구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는 다른 한 편으로 자본과 연결되어 관객을 압도하는 화려한 상업적 무대에 대한 저항이고, 바로 브레히트의 무대 미학을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다만 무대의 단순화가 분명한 연극적 장치 내지 전략이며 미학적 표현의 결과라는 것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고 극단의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빈약한 무대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된다.

5. 결말부 - 『기둥서방 오페라 Die Luden-Oper』 결말부의 활용

"말 탄 사신"의 출현은 전형적인 기계신(Deus ex machina)의 기법이다. 이 방식은 현재의 관객에게 너무 도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위험성이 있다.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대안으로 『기둥서방 오페라』의 결말부 활용을 제안한다. 해피 엔딩으로 이끄는 하나의 방법으로 갑작스런 극의 중단, 배우와 작가의 논의(말다툼)에 따른 결말 처리는 갑작스런 말 탄 사신의 출현보다 관객에게 설득력이 있다. 또한 이 논의에 관객을 참여시킬 수 있는 여지도 있어 보다 효과적으로 관객의 사고 능력에 자극을 줄 수 있는 방식이다. 이와 더불어 연극적 재미를 증대시키는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송'음악의 화성 또한 선율이나 리듬처럼 지극히 고전적인 단순함 안에서 가끔씩 나타나는 기본진행에서의 일탈과 마치 실수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낯선 음들은 관객에게 낯설게 다가가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현악기가 전적으로 배제된 색소폰, 트럼펫, 벤죠, 팀파니, 하모니움으로 된 재즈 밴드의 악기 편성 또한 기존의 오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낯선 음향의 구성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오케스트라의 배치도 무대 위에 설정하여 조명을 비춤으로써 관객들에게 노출시키도록 한 연출의 의도 또한 '낯설게 하기 효과'를 겨냥한 기법이다.

바일과 브레히트가 『서푼짜리 오페라』를 통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미식가적 취향에 따른 기존의 전통적인 오페라의 개혁이었고?'낯설게 하기 효과'를 통해 그 모순의 가면을 하나씩 벗겨나감으로써 애초의 진실된 모습을 찾기 위한 끈질긴 작업으로, 그 공감대를 가장 아래로까지 넓혀 대중에 가까이 다가가 시대가 안고 있는 모순과 불합리성을 함께 인식하게 함으로써 20세기 음악극에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을 뿐 아니라 단순하고 감미로운 음악의 '송'은 민중의 사회적 의식을 고취시키는 데에도 큰 몫을 하여 예술의 힘이 사회의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