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파

<2. "난파"와 발터 하젠클레버(Walter Hasenclever)의 "아들(Der Sohn)" 간략분석>

 

하젠클레버(1890-1940)는 1914년 첫번째 성공적인 표현주의 연극 "아들"을 발표한다. 내용은 신.구의 갈등으로 아버지 세대에 대항하는 아들을 묘사했다. 아들은 결국 폭군적인 보수성향의 아버지를 향해 권총을 겨눈다. "난파"에서 시인이 결산할 것을 결심했을 때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처럼 (별이 떨어졌다), "아들"에서 아버지는 격발 되기 전에 쓰러진다.

"난파"와 "아들"은 내용과 함께 두 작가의 종말도 자살로 흡사한 점이 많다.
작품 "난파"에는 주인공 시인이외에 여러 등장인물(작가 김우진의 환경과 관련된 주변인물의 분신)이 등장한다. 그러나 시인이 사건의 중심에 있고 그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 전개된다.
작품을 처음 읽었을 때 살아있는 사람은 단지 시인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머지 인물들은 모두 시인의 마음 속에서 시인을 지배하는 또 다른 나 "시인", 즉, 정신착란적 자아이다. 그래서 "난파"를 일인칭 드라마라고 결정짓게 되었다. 드라마의 모든 다른 인물은 그저 때때로 들어왔다 나갔다 하며, 주인공의 주변에 있고 그를 시험하며 이끌고 유도한다. 주변인물의 도움으로 시인은 계속적으로 발전하며, 목적지인 난파로 향한다. 시인은 정신적인 미성숙의 소년으로부터 성장하고 결산의 끝인 자유로운 인간으로 변화한다. 이 과정에서 어머니는 아주 중요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머니는 시인 옆에 위치하며 그에게 영향을 끼치고 결산할 수 있게 하기 위해 대부분의 상황을 구축한다. 그리고 시인의 후면에서 이를 관찰한다. 어머니는 시인의 한 부분으로서 제 2의 나 이고, 시인에게 변화를 강요하는 상극으로 스스로 작품의 중심에 있다. 작품 "아들"에서 어머니의 기능은 아들의 친구들이 이행한다. 친구들이 아들의 자아이다. 그들은 "난파"에서처럼 아들의 변화를 강요하고 지켜보며 극의 진행을 유도한다. "아들"의 친구들은 "난파"에서 김우진이 영향 받았던 버나드 쇼(George Bernard Shaw)의 문구를 어머니가 차용하듯이, 하젠클레버 역시 그가 영향 받은 다른 작가와 철학자의 문구를 사용한다. 두 작품의 바탕은 자유이고, 정신을 얽어 매는 모든 상황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작가 김우진의 환경은 잘 알려진 대로 어린나이에 친어머니를 잃었다. 그리고 여럿의 계모 밑에서 자랐다. 그의 마음 속에는 늘 어머니가 그리웠을 것이다. 그래서 어머니는 의지하고 싶은 대상, 김우진 마음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자아이었을 것이다.
"아들"에서 아들은 소녀가 죽는 환영을 통해서 살아야겠다는 의지가 생기고, 아버지가 설정한 한계선의 고리를 끊고 도시로 나간다. 그리고 성적인 경험을 통해 성인으로서 존재를 인식한다. 이는 극단적 보수성향의 아버지로부터 해방되는 바탕이 되며, 결국 아버지의 체제가 붕괴됨을 의미한다.
"난파"에서 어머니는 억압 받는 현실(아버지, 가문, 유교적 전통)을 결산(해방, 죽음)하도록 시인을 압박한다. 백의녀가 검은 피를 쏟으며 죽어나가는 장면, 비의녀와 관계를 맺고 비의녀를 잡아당겨 끌어안으려다가 졸지에 맹렬한 힘으로 내갈 기는 장면 등의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난파로 향하는 과정 중에 해결 된 자아를 시인은 자신의 가슴 속에서 하나씩 떼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머니를 밀며 완벽한 하나의 자아를 갖는시인이 된다. 시기상으로 "아들"이 먼저 발표 되었다. 아마도 일제 치하의 조국과 김우진 개인의 상황이 현실을 타파하려는 혁명적인 표현주의에 심취할 수 밖에 없었고, 발터 하젠클레버에게 영향을 받은 듯 하다.